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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이제 '두바이'로 간다 '하수잔' 편

기사승인 2021.04.09  15: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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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잔. 인천 북항아트홀 대표와 한국전통디자인협회 회장을 겸직하고 있는 그녀는 지금 글로벌브랜드 '수잔라메종'과 사랑에 빠졌다.

비움과 채움은 문법적으로 보면 틀림없는 반대말이다.
그러나 주체자의 관점으로 들여다 보면 그 단어들은 동의어일 수도 있다.

'공간'이 그 곳에 있고 그 곳을 '비어있음'으로 정하든, '채움'으로 선택하든 그건 사유자의 몫이며, 공간이라는 것은 비워지든 채워지든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사유의 주체자들을, 대중들은 '아티스트' 라고 불렀다.

미켈란젤로가 그러했고 고호가 그러했고 또 백남준도 그러했다.

'하수잔!'. 그녀는 '아티스트'다.

그리고 그녀의 현재는 불쑥 내민 명함에 쓰인 대로 '수잔라메종'의 대표이사이기도 하다.

이태리에서 자연색 그대로를 추출해내서, 감히 인공을 앞지르는 '신비의 색상'을 만드는 그 가문과 함께, 그녀는 가구를 만들었다.

"침묵하는 가구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며, 그녀는 명품의 조건을 단호히 규정했다.
"명품은 대화를 원합니다!".
"명품은 스킨십을 원합니다!"

그녀가 존재하는 공간은 '살아있는 것'으로 채우든지, 아니면 '비움'으로 '자유'를 채우든지... 그 둘 중 하나의 선택 밖에 없다.

그녀의 고집은 절대로 꺾이지 않는다. 시작과 끝이 늘 부드럽기 때문이다.

그녀는 의미 없는 공간을 못 견뎌하는 강박을 가진 아이였던 듯 싶다. 여섯 살 때, 무용학원에 가서 온 몸으로 허허로운 공간을 밀어내고 채우는 일들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그녀는 귀족적인 골격을 가지고 태어나 아직도 귀족같은 자태로, 그런 표정으로 살고 있다. 대체적으로 귀족여인이라 함은, 일견 파리해 보일 정도의 연약함이 기본이며, 그녀 역시 그러했다.

진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공주답게 연약했고 그런 이유로 우아하게 무용을 시작했다.

태권도만큼은 아니지만 무용은 허약한 그녀에게 적당한 근력과 지구력, 면역력을 키워줬고, 대학까지 무용을 즐길 수 있는 체력을 허락했다.

무용은 그녀에게 세상의 맛을 보는 촉수였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창이었으며 사막을 건너는 이에게 필요한 낙타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녀가 사막을 관통했을때, 그녀는 이윽고 낙타에서 내려 아스팔트길을 따라 도시로 가는 길을 택했다.

부산.. 사십대 초반, 무대를 떠났지만 무용을 기반으로 한 '댄스클래스'를 운영하기도 했고 '깜짝 놀랄 일'을 만드는 '파티플래너'로써 각광받기도 했다.

"무엇으로 규정되기 보다는 예술을 기반으로 한 총체적 비즈니스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람이 행복해지는 예술성있는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기도 했지요."

많은 일들을 해치웠다. 부산국제무용제 행사감독 겸 심사위원, 대한민국무용제 시민심사위원, 무대공연전시와 개인전 등, 통합전시만 100여 이상을 치러내면서 아티스트가 농사일보다도 훨씬 고된 노동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녀는 좀 더 생산적인 농사를 결심했다.

바로 '사람농사'.
사람농사는 '노동집약적'이지 않고, '사유집약'적인 노동이기 때문이었다.

세계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번다는 유대인들은 모든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 식사와 함께한다. 아, 물론 경제 기적을 만든 한국도 마찬가지. 우리 역시 '밥 먹고 하자!' 가 기본 아닌가.

'테이블' 이라는 생활공간을 '사회적 공간'으로 인식한 서구인들의 '테이블세팅'을, 그녀는 아티스트의 감성으로 콘텐츠화 시켜 냈다. 그리고 이내 감각적인 '글로벌 스탠다드'를 창조해내기도 했다.

그 원동력은 감각적인 오브제 등이 만든 예술적인 완성도였다.

   
 

그녀는 'JAN ART 인터내셔널 테이블 랩'을 통해, '테이블'이 위대한 경영학 논문이나 철학서보다도 더 큰 지혜의 보고가 되며 패션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내기도 했다.

그녀는 '내가 미술공부를 했었더라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을텐데...' 라며 아쉬워했다. 얼마나 더 세상을 놀래키려고.,

그녀는 위로 세 명의 언니가 있고, 그녀들은 모두 미술을 전공했다. 사실 그녀도 미대를 가고자 했지만 부모가 말려서 참았단다. 어떤 부모든 딸 네 명 중 한 명 정도는 말리고 싶었을 거다. 그럼에도 그녀의 미술적 DNA를 끝까지 감출 수는 없었나 보다.

“혹시 호주머니 속에 넣어둔 송곳에 찔려 본 적 있어요? 불쑥불쑥 튀어 나오는 색감에 대한 특별한 느낌 때문에,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곤 했었어요. 미술은 마치 마술처럼, 내 인생을 순간순간 견인하곤 했습니다”.

"배우지도 않은 그림을 그리면서, 미술을 전공 했다면 좀 더 열정적이고 글로벌한 아티스트가 됐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았어요."

아쉬움을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서는 왠지 결핍보다는 오히려 싱싱한 여유마저 느껴졌다.

“여섯 살 때 시작한 무용으로 마흔 살까지 살면서, 무용가의 눈으로만 세상을 이해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보통 여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세상은 그날부터 신대륙이었다.

그녀가 만난 신대륙은 현란하게 아름다웠다. 도심의 네온사인이 강물처럼 흘렀다. 그 네온사인의 아름다운 숲 속에는, 정글에나 있을 법한 맹수들의 날카로운 눈빛이 총총했지만...

그 뒤, 그녀는 수시로 맹수들과 조우했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표범을 만나면 그 현란하고 환상적인 바디 라인에 감탄했고, 사자를 만나면 박제되지 않은 그 위엄을 존중했다.

맹수와 한 우리 속에 놓여 졌을 때, 대개는 그냥 죽을 수밖에 없다. 유일한 생존 방법이라 함은, 맹수와 친해지는 것.

아마도 그녀는 맹수랑 친해지는 법을 천성적으로 알고 있었나 보다.

그녀에게 "호랑이든 붉은 곰이든 즉시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가능한가?" 물었다.

대답은 뜬금없었다. "아무생각 안합니다!"

정말 맹수조차 무시해 버리는 그녀의 시크한 열정이 도시의 맹수들을 조련하는 무기가 되었던 것일까? 그녀는 어쩌면 아직도, 도시의 맹수들을, 마치 어릴 적부터 늘 친근했던 키 큰 고양이나 진돗개쯤으로 인식하고 사는지도 모른다.(하긴, 인터뷰 미팅 때 필자에게 '주의가 산만한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터무니없는 무지와 열정에 도시의 맹수들은 때때로 꼬리를 말고 화끈한 포옹을 하기도 했다. 가구 때문에 두바이에서 날아온 그들도 그랬다.

   
 

햇살 좋은 봄날

인천시 서구 북항로에 있는 산업단지 한가운데, 뜬금없이 고색창연한 사찰로 보이는 4층 건물 안에서 그녀를 만났다. 이 곳이 바로 그녀의 아지트다.

거기엔 '북항 아트홀'이 있고 갤러리와 명상 공간이 있고, 4층에는 비밀 갤러리 같은 그녀의 집무실과 차실이 있다.

그녀는 그 곳에서 '세작' 한 줌을 우려내며, 찻잔 속에 고인 동자승의 눈물을 본다. 찻잔 속에 외딴 계곡의 바람소리가 풀리고 첫 잎을 따다가 먼 산봉우리를 바라보던 그 동자승의 풀잎같은 한숨 소리가 아리다.

'아 ! 봄인가 봐요!'

북항아트홀 대표와 한국전통디자인 협회 회장을 겸직하는 그녀는 지금 글로벌브랜드 '수잔라메종'과 밀회하듯 교감하고 있다. 그녀는 다 계획이 있었던 거다.

'수잔 라메종'은 이제 '두바이' 로 간다!
하이! 수잔, 굿럭!
"렛츠 고 두바이!"

서진수 기자 gosu4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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